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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르샤와 스페인 축구는 왜 강한가 - 이준석의 킥 더 무비<칼리토, 드디어 축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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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의 엠블럼. '라 마시아'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의 상징이다.

라 마시아(La Macia)


최근 주춤하긴 하지만, 한동안 스페인 축구의 기세가 대단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만년 우승후보로 평가절하되던 스페인이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무서운 기세로 세계 무대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점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이었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당시, 스페인 대표팀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습니다. 멤버 중 무려 6명이 같은 프로팀에서 뛰고 있었죠. 푸욜, 피케, 부스케츠, 페드로, 이니에스타, 샤비가 그들인데 모두 FC 바르셀로나 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르셀로나 축구의 특징인 짧은 패스와 빠른 움직임을 스페인 축구에 완벽히 이식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티키 타카(Tiki Taka)’ 축구입니다.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을 의미하는 ‘티키 타카’는 짧고 빠른 패스를 중심으로 상대방의 밀집 수비를 공략하는 바르셀로나 전술을 묘사한 말입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지역감정도 뛰어 넘어 스페인 축구를 강하게 만든 바르셀로나 축구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많은 사람들은 천문학적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들을 떠올릴 겁니다. 재미있는 건,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오른 스타들을 사 오는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달리 바르셀로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스타들을 키운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를 ‘유소년 축구’ 혹은 ‘유소년 시스템’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바르셀로나 유소년 축구를 상징하는 말이 바로 ‘라 마시아(La Macia)’입니다. 스페인어로는 평범한 농가를 의미합니다.

라 마시아는 원래 바르셀로나 유소년 선수들의 기숙사의 별명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의 인재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축구 좀 한다는 선수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르셀로나 성인팀의 전술인 ‘티키 타카’ 스타일에 맞춰 축구를 익히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성인이 되어 바르셀로나 팀에서 뛸 때도 특별한 적응 없이 익숙한 전술에 맞춰 자신의 기량을 뽐내게 됩니다.

이처럼 스페인을 비롯한 축구 강국에서는 클럽팀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의 축구 철학과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선발해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합쳐져 오늘날 ‘무적함대’로 불리는 강한 스페인 축구를 만들고 있죠.

이런 스페인의 유소년 정책을 잘 그린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칼리토 드디어 축구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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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축구를 택한 소년


칼리토는 스페인의 어느 고아원 학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아에 대한 동정심과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칼리토는 여느 초등학생 꼬마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밝은 꼬마지요.

하지만 기숙사의 사감인 히폴리토(Hipolito)는 축구에 정신이 팔린 고아들이 못마땅합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많은 뇌물을 받고 불임부부들에게 아이들을 입양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의 몸값을 올릴 필요가 있죠. 히폴리토는 고아들을 혹독하게 공부시켜 성적을 올리려 하고, 축구 등의 체육 활동을 금지시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칼리토에게 큰 기회가 찾아옵니다. 유럽 유소년 컵 축구에 참가할 선수들을 공개 모집하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그러나 히폴리토는 온갖 방법으로 칼리토가 선수 선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그런 칼리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디에고(Diego)입니다. 칼리토가 사는 고아원의 기술자인 디에고. 사실 디에고도 이곳 고아원 출신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유소년 축구 코치이기도 하죠.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스페인 유소년 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됩니다. 하지만 축구가 못마땅한 히폴리토는 디에고의 감독 부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를 고아원에서 쫓아내려 합니다.


디에고는 칼리토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음을 눈치 챕니다. 그리고 그를 돕기 위해 고아원과 감독 일을 병행하죠. 몰래 칼리토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유소년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디에고. 하지만 팀원들은 고아인데다 감독의 인정까지 받고 있는 칼리토를 시기합니다. 팀원들의 외면과 함께 칼리토 본인의 소심함도 문제가 됩니다. 고아로 자란 칼리토는 매사에 주눅이 들어 있고, 이는 그의 플레이의 결점으로 작용합니다.

어쨌든 유럽 유소년컵 축구는 시작됩니다. 칼리토는 고아원을 도망쳐 나와 대표팀에 합류합니다. 마침내 독일과의 결승전, 칼리토를 스트라이커로 세우려는 디에고. 하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디에고를 아동 납치 혐의로 체포하려 합니다. 과연 칼리토는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을까요?

우승보다 스스로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

디에고의 훈련을 보면 스페인 유소년 축구가 지향하는 바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축구 선진국에서는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기 때문에 선수가 잘못을 해도 호통을 치기보다 격려를 하면서 아이들이 축구를 재미있게 배우도록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의 우리나라 학원 축구가 폭력이나 경쟁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았기에 유럽의 자율적인 훈련방식이 더 부각되기도 했죠.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스페인 유소년들의 축구 방식은 마냥 즐기는 축구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폭력을 쓰지는 않지만 선수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주저 없이 벤치 신세로 돌리고 치열한 포지션 별 경쟁을 시키죠. 아이들의 취미 활동으로서의 축구가 아닌, 프로 진출을 전제로 한 유소년 축구 교육의 엄함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그런 엄한 훈련을 받아들이는 스페인 꼬마들의 반응입니다. 아직 솜털도 다 사라지지 않은 11~12살의 아이들이지만 코치가 잘못을 지적할 때는 주저 없이 자기의 생각을 말합니다. 패스를 하지 않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아이를 다그치면 그 아이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공을 저 아이에게 줘도 득점을 못하니까 패스를 안 하는 것이라고요.

고아라는 자기 처지에 주눅이 들어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는 칼리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기보다는 홀로 낚시를 통해 강한 내면을 가지도록 유도하죠. 그리고 그를 통해 단독 찬스에서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기르도록 합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칼리토가 유소년 대표팀에 뽑혔으니 대의를 위해 축구협회에서 고아원에 협조 요청을 하면 칼리토를 차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디에고나 주변의 어른들 모두 칼리토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독일과의 결승전 때, 실점에 실망하여 초상집이 된 팀원들에게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중요한 건 못 이겼다는 게 아니라 너희가 여기까지 와서도 배운 게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축구로 생각하는 선진국의 유소년 시스템. 물론 그 말도 맞지만 이 영화를 통해 본 스페인의 축구 철학은 즐기는 축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결정하고 생각하는 축구. 감독의 꾸지람을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할 줄 아는 축구가 스페인 유소년 축구인 것 같습니다.

스페인과 함께 유소년 육성에 열심인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작은 나라이지만 오늘날 전 세계 유소년들을 키우고 선진국에 이적 시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죠. 이들의 축구 철학도 비슷합니다.

과거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명장 보비 롭슨(Robert William Robson)이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을 맡았을 때 그는 문화 충격을 받게 됩니다. 군말 없이 감독의 지시를 듣고만 있는 잉글랜드 선수들과 달리, 네덜란드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사사건건 토를 달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는 거죠. 감독의 권위를 중시하는 잉글랜드 인에게 이는 부정적으로 비쳐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네덜란드의 토론하고 생각하는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라는 창의적인 미드필더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요한 크루이프는 FC바르셀로나로 건너가 네덜란드의 창의적인 축구를 그 곳에 이식했죠. 그 정신은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로 대표되는 스페인 유소년 축구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칼리토 드디어 축구하다>를 통해 우리는 축구 선진국의 유소년 시스템이 즐기는 축구, 재미있는 축구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축구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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