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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이랜드FC의 파격적인 행보
스포츠 구단은 팬을 비롯한 일반 대중에게 오락과 유희를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연극, 영화 등 다른 문화생활은 스포츠 구단이 경쟁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축구 클럽은 영화나 TV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폭발적인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사회적인 파급효과도 훨씬 더 크다. 또 다른 형태의 대중오락과 축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바로 ‘내 팀’이라는 인식이다. 다시 말해, 축구팬들은 경기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 그들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먼저고, 축구를 즐기는 것은 그 다음 일인 것이다. 경기에서 이겨야 즐거움이 있는 축구 팬들 중에서는 간혹 내 팀이 져서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는 사람이 있다. 반면, 뮤지컬 팬들 중에는 공연이 형편없다고 해서 식사를 거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프로축구 팀들에게는 좀처럼 ‘내 팀’이라는 인식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유럽 리그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요즘, 우리들의 눈높이는 유럽에 맞추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과 30여 년에 불과한 한국 프로축구를 유럽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수십 년 이상 더 발달된 역사를 가진 유럽의 프로축구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극복해가며 오늘날과 같은 축구 문화를 완성했다. 한국 프로축구가 짧은 역사에 비해 놀랄 만한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은 과도기다.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데뷔 전부터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팀이 있다. 2부 리그(K리그 챌린지) 신생팀, 서울 이랜드FC(이하 이랜드)다. 이들의 행보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함으로 리그 발전을 자극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팬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선보여
2014년 12월 29일, 창단 팀 이랜드의 첫 공식행사 ‘퍼스트터치’는 정해진 일정에 맞춰 빈틈없이 진행됐다. 감독과 선수들의 공식 기자회견, 선수단 자율 인터뷰, 팬들과의 만남, 그리고 공개 훈련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러웠다. 착실히 준비한 만큼 흥행도 대박을 쳤다. 100여 명의 팬들이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효창운동장을 찾았다. 수십 명의 취재진도 선수단을 취재했다. 국내 포털 사이트는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 팀 감독이 아니라 마틴 레니 이랜드 감독의 얼굴과 기사로 도배됐다. 축구단의 존재를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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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는 팀 첫 공식행사 ‘퍼스트터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이날 백여 명의 팬들이 참여했고 수십 명의 취재진이 선수단을 취재해 팀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진=서울 이랜드FC



이뿐 아니라 이랜드는 팬들에게 감독과의 선상 만찬을 주선했고, 남해 전지훈련에 초청했으며, 국내 축구 팀 중에는 최초로 구단 시즌티켓을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 박상균 이랜드 대표이사는 “팬들에게 확실한 소속감을 주기 위해 한정판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랜드는 단순히 성적을 위한 팀이 아닌, 팬들을 위한 팀을 건설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PL출신 조원희 등 영입, ‘이슈와 팀 빌딩’이라는 두 마리 토끼 위해
지난 5일, 이랜드는 2006 독일 월드컵과 EPL, 아시아 3개국을 두루 경험한 베테랑 미드필더 조원희의 영입을 공식 발표해 이슈가 됐다. 조원희의 영입 이전에는 국가대표 출신의 골키퍼 김영광, 미드필더 이재성 등의 베테랑 선수들을 식구로 만들었다. 이로써 이랜드는 2부리그 신생 팀임에도 K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포진 된 '우승 후보'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신생 팀의 경험적 한계를 극복하고, 대외적으로는 이슈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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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팀 빌딩’. 지난 5일, 이랜드는 2006 독일 월드컵과 EPL, 아시아 3개국을 두루 경험한 베테랑 미드필더 조원희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사진=서울 이랜드FC



이밖에도 이랜드는 기존의 브라질 등 남미권으로 대표되는 외국인 선수를 벗어나는 영입을 시도했다. 이영표와 함께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활약했던 중앙수비수 칼라일 미첼(28)은 트리니다드토바고 대표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 중이고, 공격수 라이언 존슨(31)은 자메이카 대표다. 또 아시아 쿼터제로 네덜란드(VVV 펜로)와 태국(수판부리)리그를 거친 J리그 신인왕 출신 공격수 로버트 카렌(30)을 영입했다. 그는 북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래도 이기는 축구를 해야
마케팅의 전제는 승리다. 왕년의 스타들을 영입한 것 역시 성적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를 위한 진지함은 신중한 코치진 임명에서 엿볼 수 있다. 이랜드는 초대 감독으로 마틴 레니(40)를 선임했다. 2005년부터 미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마틴 레니 감독은 미국 프로축구 2부 리그 하위권에 머물던 클리브랜드 시티스타즈와 캐롤라이나 레일호크스의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리그 정상으로 올려놓은 바 있다. 이후 미국 프로축구 1부 리그 메이저리그사커(MLS) 최하위에 있던 밴쿠버 화이트캡스를 2010년에 맡아 부임 첫해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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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는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최하위에 있던 밴쿠버 화이트캡스를 부임 첫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올려 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마틴 레니(40)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또한 이랜드는 레니 감독을 보좌할 코치로 김희호(34)를 영입했다. 2009년 한국인으로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UEFA(유럽축구연맹) A 코칭 라이선스를 취득하기도 한 김희호 코치는 J리그 사간 도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윤정환 감독을 도와 사간 도스 돌풍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이밖에 피지컬 코치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WBA)과 스코틀랜드 명문 팀 셀틱에서 스포츠 과학자로 활약했던 해리스 댄(46), 골키퍼 코치에 UEFA A 골키퍼 코칭 라이선스를 보유한 아론 트레드웨이(39)가 각각 낙점됐다. 여기에 창단과정부터 구단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지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최태욱을 유소년 코치로 선임했다.

세계적인 코치진이 합류한 이랜드는 지난 1일, 8주간의 과학적인 전지훈련을 통해 기초 전력 다지기에 돌입했다. 레니 감독은 “과학적으로 8주의 기간이 최상이라고 한다. 그 이상은 선수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첫 경기가 중요하지만, 시즌 내내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8주로 잡았다”며 체계적인 훈련만이 성적의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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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첫 공개훈련을 팬들과 함께하는 서울 이랜드FC. 팬들에게 확실한 소속감을 주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다른 팀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 많은 클럽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랜드처럼 번뜩이는 데뷔 무대를 갖지 못했다. 연고지가 수도 서울이라는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들의 준비성과 아이디어, 추진력은 챌린지 팀들뿐만 아니라 1부 리그인 클래식 팀들까지 귀감이 될 만하다.

3월 21일, K리그 챌린지가 개막한다. 이제 리허설이 끝나고 본무대가 시작된다. 그들이 리허설에 쏟은 파격적인 행보만큼이나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축구 팬들이 공연장에 속속 입장하고 있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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