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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민을 위한 변명, ‘농구판 홍명보로 만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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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전자랜드와의 경기 도중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이상민 감독(오른쪽).

[헤럴드스포츠=나혜인 기자] 올시즌 프로농구의 화두 중 하나는 ‘영원한 오빠’ 이상민(서울삼성)의 감독 데뷔다. 농구팬들은 대학시절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고, 프로에서 9년 연속 올스타 팬투표 1위를 차지했던 한국농구 최고의 슈퍼스타가 지도자 인생에서도 선수 시절만큼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시즌 초반 성적은 좋지 않다. 20일 경기에서도 삼성은 전자랜드의 끈끈한 조직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79-85로 패했다. 1승 4패로 이날 경기가 없던 창원LG와 함께 공동 최하위로 주저앉았다. 초보 감독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는 평가부터 스타 감독은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싸늘한 시선까지 눈에 띈다. 연신 벤치에서 답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상민 감독은 지난 브라질월드컵 때의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감독을 연상시킨다. 공교롭게도 홍명보 전 감독을 수식하는 문구는 ‘영원한 리베로’다.

지난 여름 한국축구대표팀은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홍명보 감독은 ‘의리 축구’ 논란에 휩싸이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사실 월드컵 본선을 꼭 1년 앞두고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촉박한 시간에 선수 선발과 전술적인 부분에서의 한계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팀을 맡긴다는 건 그 누군가가 원하는 팀을 만들어 보라는 뜻과 같다. 박지성-이영표의 은퇴 이후 축구대표팀은 세대교체 과정에 있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은 사상 가장 어린 팀이었다.

농구의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어디까지나 리빌딩의 과정에 있는 팀이다. 슈터 이규섭과 이상민-강혁-김승현으로 이어지는 가드왕국의 자리에 이제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선수는 이정석 정도다.

삼성은 지난 4월 코치이던 이상민을 감독으로 승격시키며 “선이 굵은 리더십과 농구에 대한 감각과 이해 등이 뛰어나 구단이 추구하는 도전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는 선임배경을 밝혔다. 여기에 “정상의 가치와 의미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키워드는 도전과 변화, 정상이다. 2008-2009 시즌 챔프전 진출 이후 줄곧 6강 언저리에 맴돌거나 2011-2012 최하위를 기록하던 삼성이 이상민을 감독으로 앉힌 이유도 결국 리빌딩을 통한 정상 도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빌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독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2011-2012시즌 우승을 거머쥔 안양KGC가 그랬고, 올시즌 초반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고양오리온스도 추일승 감독의 지도 아래 3년간의 숙성 단계를 거쳤다. 오히려 삼성의 리빌딩 시점이 강혁과 이규섭의 은퇴 이후라고 본다면 1년 정도 늦은 감이 있다. 리빌딩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지지부진한 성적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민은 지금의 삼성에 꽤 적합한 감독이다. 우선 확실하게 추구하는 팀컬러가 있다. 속공을 중심으로 하는 빠른 농구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상민 감독이 부임 첫 시즌부터 확실히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비록 다섯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삼성은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속공을 기록하고 있다. 20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도 이상민 감독의 컬러는 확연히 드러났다. 삼성의 공격 템포는 전자랜드보다 훨씬 빨랐다. 가드진은 드리블 한번치고 무조건 패스를 뿌렸다. 상대의 자유투 이후 리바운드를 따낸 키스 클랜턴이 드리블 한번 치지 않은 채 바로 골밑으로 달려 나가는 이시준에게 롱패스를 연결하는 부분도 단적인 예였다. 연습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사실 속공은 드리블보다 빠른 판단력에 이은 패스가 성패를 좌우한다. 사람보다 공이 빠른 게 당연한 이치다. 이상민 감독은 “(가드들에게)하프코트를 넘어가기 전에 무조건 줄 곳이 보이면 패스를 뿌리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한국농구 최고의 가드로 군림했던 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속공의 정석을 팀에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민-강혁-김승현으로 이어졌던 ‘가드왕국’의 타이틀은 이제 최고 가드 출신 사령탑 아래서 이정석-이시준-박재현이 넘겨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2년차 박재현의 성장이 눈에 띈다. 20일 경기에서도 쉴새없이 코트를 휘저으며 11득점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가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삼성은 어느새 2m넘는 선수 8명을 보유한 장신군단이 됐다. 이규섭의 은퇴 이후 포워드진이 약해졌다지만 차재영과 김명훈 등 향후 삼성을 이끌어갈 재목들이 충분하다. 1순위로 뽑은 라이온스가 외곽 위주의 플레이를 하고,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턴오버와 뒷심 부족이 약점이나 삼성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 ‘만수’라 불리는 유재학 감독은 이상민 감독을 두고 “워낙 머리가 좋아 전술적인 능력은 걱정할 게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슈틸리케 신임 감독 부임 이후, 축구대표팀을 향한 시선이 꽤나 달라졌음을 느꼈다. 지난 14일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패배했지만 비난의 화살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명보의 실패 이후 새로운 감독에게 시간을 두고 믿어보자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는 형성된 듯하다.

감독 이상민은 이제 시작이다. 삼성이 이상민을 ‘농구판의 홍명보’로 만들어서는 그토록 부르짖는 농구명가의 부활을 이룰 수 없다.

■ 20일 프로농구 결과

인천전자랜드(3승1패) 85-79 서울삼성(1승4패)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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