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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중독의 편파야구 Just For Twins!] 우리에게는 대화형 포수가 있다
19일 경기 결과: LG 트윈스 13 - 4 NC 다이노스

INTRO - 최경철의 존재감
MBC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보면 트윈스는 매우 괜찮은 공격형 포수와 수비형 포수를 보유했던 경험이 있다. MBC 시절 심재원은 프로야구 개막 이전부터 국가대표 안방을 지켰던 최고의 수비형 포수였고, 차동열도 그에 버금가는 수비 능력을 인정받았다. 트윈스 시절 김동수는 1992년과 1998년 두 차례나 20홈런을 날렸고, 조인성은 2010년 트윈스 포수로는 최초로 100타점을 넘긴 공격형 포수였다.

지금 트윈스의 안방을 지키는 이는 최경철이다. 최경철은 타율로 보나 홈런 숫자로 보나 절대 공격형 포수로 불릴 선수가 아니다. 물론 수비형 포수로는 손색이 없다. 3할이 넘는 도루 저지율도 그렇고, 투수를 이끌어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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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초 3-0 리드 상황에서 석점을 더 보태는 결정적 스리런포를 날린 트윈스의 포수 최경철.

그런데 이 최경철을 단지 ‘괜찮은 수비형 포수’라고만 부르기는 뭔가가 허전하다. 19일 준플레이오프 개막전을 보면서 필자는 최경철이 ‘참 좋은 대화형 포수’라는 것을 느꼈다. 단순한 수비형 포수에 머무르지 않는 대화형 포수. 투수들의 순간적이고 미세한 움직임조차 파악해 달래고 안정시키며 시합을 끌고 갈 줄 아는 포수. 투수들에게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는 것이 시합 중에 완연히 드러나는 무명의 노장. 팀의 전체를 이끄는 대화형 포수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최경철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2회말 선발투수 류제국이 불의의 솔로 홈런을 맞자,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에서 최경철은 뭔가 진지하게 류제국과 오랜 대화를 나눴다. 류제국은 1회초를 잘 막았지만 꽤 잘 맞은 타구를 여러 개 맞았다. 컨디션이 확실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최경철과의 대화 이후 류제국은 눈에 띄게 안정감을 되찾았다.

4회말 류제국이 1사 2루의 위기를 넘기자, 최경철은 류제국이 마운드를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더그아웃까지 동행했다. 그리고 다시 뭔가 대화를 나누며 투수를 안정시켰다. 5회말 류제국이 불의의 헤드샷으로 퇴장을 당했지만 최경철은 이어 올라온 윤지웅과 신재웅을 침착하게 안정시키며 위기를 벗어났다. 트윈스는 이날 무려 7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는데, 최경철은 매 투수마다 섬세한 변화만 발견되면 투수와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날 최경철이 보여준 압권은 1회 초, 상대의 두 번째 투수 웨버에게 통렬한 3점 홈런을 날린 것이었다. 적장인 김경문 감독조차 “큰 펀치를 맞고 선수들이 당황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임팩트 있는 홈런이었다. 하지만 최경철은 스스로의 활약에 들뜨지 않고, 두 번의 투수 패스트볼을 걷어낸 뒤 상대의 발 빠른 1루 주자를 2루에서 정확히 잡아내는 등 안정감 있는 수비로 마운드를 이끌었다.

그는 투수들과 대화를 할 줄 아는 포수였다. 영건들이 많은 트윈스의 마운드에는 “왜 그것밖에 못 던지느냐”고 질타를 하는 시어머니 같은 포수보다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맏형 같은 포수가 필요하다. 최경철이 지키는 안방이 9개 구단 중 최고라고는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트윈스의 안방이 9개 구단 중 가장 따뜻한 진심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최경철이 앉아있는 홈플레이트가 이날따라 더욱 든든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최고의 멤버 - 브래드 스나이더
전날 미디어 데이에서 양상문 감독은 “미쳤으면 하는 선수를 꼽아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주저 없이 브래드 스나이더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이날 큰 이병규 대신 스나이더를 선발 라인업에 올렸다. 사실 팬들의 눈에 스나이더는 아무 공에나 마구 선풍기 스윙을 휘두르는 그저 그런 공갈포형 타자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는 감독의 눈에 스나이더는 분명 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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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부상 이후 도통 타격감을 찾지 못하던 스나이터가 전혀 다른 타자가 되어 트윈스의 포스트 시즌을 이끌었다. 그는 19일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 1도루라는 만점 활약을 펼치며 '포스트 시즌의 사나이'가 될 준비를 마쳤다.

스나이더에게 이번 포스트시즌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그가 포스트시즌에서도 활약을 하지 못한다면 트윈스는 그와 재계약을 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스나이더 스스로도 트윈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간절히 바라는 트위터 멘션을 날리며 가을 잔치를 기다렸다. 그 스스로도 재계약을 위해 남은 기회는 이번 단 한 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9일 스나이더는 ‘내가 아는 그 스나이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선수의 모습을 보였다. 첫 타석부터 그의 타구는 장쾌하게 외야로 날아갔다(물론 결과는 아쉽게도 플라이 아웃이었지만). 예열을 마친 스나이더는 두 번 째 타석에서 빨래줄 같은 안타로 1루를 밟았다.

그 다음,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장면. 2사 1루에서 스나이더가 2루를 훔쳤다. 당황한 다이노스의 내야진은 공을 흘렸고, 스나이더는 3루에 안착했다. 이어 김용의의 내야 안타로 추가점을 올리며 트윈스는 이날 승부의 추를 완전히 빼앗았다.

스나이더의 안타와 도루는 누구도 더 이상 점수가 나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2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딱 1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냈다. 뜻밖의 도루도 대단했지만 다음 타자 김용의의 타구가 내야 안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나이더가 2루가 아니라 3루에 있었던 것은 더 가치가 있었다. 이후 스나이더는 안타를 두 개나 더 쳤고 타점도 하나 올렸다. 볼넷도 골라 스나이더답지 않은(응?) 선구안을 과시했다.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 타자들이 리그의 특성과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스나이더는 전형적인 실패의 길을 걷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필자가 스나이더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점 하나는, 그가 한국 리그에서의 성공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트윈스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은 후보 선수였지만, 트위터 등을 통해 열렬히 트윈스의 4강 진출을 열망했다. 그에게는 분명 한국 리그에 남고 싶은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열정을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그 열정은 꽃이 핀다. 다만 문제는 한국 리그가 외국인 선수들을 오래 기다려 주는 리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스나이더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스나이더는 마지막 기회의 첫 관문을 100점 만점으로 통과했다. 19일 활약은 그의 열정이 낳은 산물이라 믿는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남은 시간을 부디 소중히 활용하기를 소망한다. 브래드 스나이더가 트윈스 포스트시즌의 진정한 영웅이 되어, 내년에도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기를 기원한다.

*수은중독: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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