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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알 마드리드와 대항해 시대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레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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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로고.

대항해 시대에 대한 향수, 갈락티코 정책

유명한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전쟁 3부작』에는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중세 말기 전쟁이 등장합니다. 오늘날 관광지로 유명한 베네치아. 하지만 르네상스 초기의 베네치아는 오늘날의 터키인 오스만 제국과 패권을 다퉜지요.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 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 등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유럽 역사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갑니다. 아메리카 대륙 탐험에 나선 스페인이나 포르투칼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각종 무역과 경제 활동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바로 이때를 대항해 시대(Grandes Navegacoes)라고 부릅니다. 동명의 게임으로도 유명합니다.

축구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역사 이야기냐고 궁금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살펴볼 축구 영화를 보니 머릿속에서 대항해 시대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명문팀을 다룬 영화 <레알(Real Madrid the movie)>입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죠.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축구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05년,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galactico)정책이 극에 달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갈락티코’란 스페인어로 은하수(galaxy)란 뜻입니다. 즉 수많은 스타들을 데려오겠다는 이야기이죠. 베컴, 오웬, 지단, 호나우도, 피구, 라울, 카시야스 등등. 각국 대표팀의 상징과도 같은 스타들이 한 팀에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전술적 균형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 영입이라 하여 오늘날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네요.

최근 유럽과 스페인에는 경제 위기가 닥쳤습니다. 한때는 신대륙의 금은보화와 노예들을 닥치는 대로 끌고 와 유럽 최고의 부국으로 군림했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경영했던 스페인. 그러나 지금은 관광과 농업이 주된 산업입니다. 그마저도 유럽을 휩쓰는 경제 위기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이런 스페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 중 하나가 축구입니다. 최근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도 프로축구인 프리메라리가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죠. 아마 스페인 사람들은 세계 최강인 자국 프로축구를 보면서 과거 세계를 경영했던 황금기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스페인 축구팀의 별명이 무적함대(Spanish Armada)인 것도 우연이 아니겠죠.

이런 스페인 축구를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에 과거 제국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향수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일까요? 극단적으로 말해 마드리드에서 뛰는 각국의 스타 선수들은 세계 각국의 금은보화이고, 마드리드에 열광하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 본국의 문화를 이식받던 과거의 식민지를 투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던 과거의 수탈과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자국 팀에 열광하는 세계를 보면서 무의식중에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런 관점은 이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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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봉작 영화 레알.

5개국 사람들의 색다른 클럽 사랑

# 도쿄
고등학생 커플인 코지와 사야카. 사야카는 여학생임에도 엄청난 축구광입니다.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 아니 사실 베컴의 팬이죠. 둘의 사랑이 다른 무엇보다 깊다고 믿던 코지.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친선 경기를 위해 일본을 방문하자 사야카는 코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베컴을 보러 갑니다.

마침내 레알 마드리드와 일본팀의 친선 경기가 열립니다. 하지만 이상하네요? 일본팀은 전원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마징가Z>의 주제가를 배경으로 만화 일본팀은 마드리드를 향해 맹공을 펼칩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사야카는 베컴이 일본을 떠난 뒤에도 계속 코지를 속입니다. 감기가 걸렸다고 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틀어주는 클럽에 가서 레플리카 유니폼을 입고 베컴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결국 코지에게 거짓말이 들통 나고 말죠. 베컴과 자기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코지. 하지만 사야카는 즉답을 피합니다. 마치 실연을 당한 것처럼 방황하던 코지는 거리가 온통 마드리드의 광고 일색인 것에 현기증을 느낍니다. 가까스로 피해 들어간 미용실. 하지만 미용사는 코지의 머리를 베컴 스타일로 깎죠.

과연 코지와 사야카는 베컴이라는 가상의 라이벌을 제치고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 미국
뉴욕의 고급 맨션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메건(Megan)의 가족. 메건은 콜롬비아 대학교 여자 축구부원입니다. 스트라이커로 매 경기 득점을 하고, 프로팀에서도 그녀를 노리죠. 이런 그녀의 뒤에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사이좋은 부녀는 틈날 때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위성중계를 같이 시청합니다. 하지만 메건의 어머니는 ‘사커’에 푸욱 빠져 있는 부녀가 못마땅하죠.

어느 날 메건은 경기 중에 오른쪽 무릎의 치명적인 부상을 입습니다. 의사는 그녀가 다시는 축구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하죠. 어머니는 이 기회에 딸이 축구 같은 건 잊어버리고 다른 뉴욕의 아가씨들처럼 세련된 뉴요커의 삶을 살길 바랍니다.

하지만 메건의 코치는 끈질기게 그녀를 설득합니다. 코치는 브라질의 호나우도도 인터 밀란 때 무릎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반대쪽 다리를 단련시킴으로써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코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메건. 그녀는 왼쪽 다리를 훈련하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뉴욕의 번화가에서 왼발로 우유팩을 차며 돌아다니는 메건. 그녀는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중남미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언덕에는 빈민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축구를 하는 한 무리의 꼬마들이 있지요. 맥시(Maxi)는 매일 길거리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폴(Paul)이라는 할아버지가 나타나 꼬마들에게 축구를 가르쳐주기 시작합니다. 맥시는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폴 할아버지를 유난히 따르게 됩니다. 그러다 맥시를 미행한 아버지가 폴 할아버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폴 할아버지에게 앞으로 맥시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화를 내죠. 알고 보니 폴 할아버지는 맥시의 친할아버지였던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왜 맥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부자지간임에도 저렇게 원수같이 지내는 걸까요? 아무튼 맥시는 그 이후로 외출금지를 당합니다. 하지만 용케 빠져나오죠. 맥시는 동네 사람들과 같이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를 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폴 할아버지, 아니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만나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맥시. 할아버지는 자신이 옛날에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 선수인 디 스테파뇨를 납치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맥시의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있다고 말하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편에 계속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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