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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중독의 편파야구 Just For Twins!] 트윈스, 번트의 강팀을 번트로 제압하다
11일 경기 결과: LG 트윈스 15-2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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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기에서 4회초 두산의 선발투수 마야가 트윈스의 벤치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면서 양팀의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양상문 감독은 이에 대해 "마야가 욕을 해 화가 났다"고 밝혔고, 두산은 "마야가 단지 다음 타자가 빨리 들어오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INTRO - 보기 드문 벤치 클리어링
오늘 시합을 복기하기 전, 잠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던 4회의 상황을 돌아보고자 한다. 감독이 직접 상대팀 투수를 향해 걸어 나오면서 벌어진 매우 보기 드문 벤치 클리어링이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감독과 선수 사이의 충돌로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진 경우가 프로야구 역사에 또 있었나 싶다.

양상문 감독이 옳으냐, 두산의 선발 투수 마야가 옳으냐를 이 자리에서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이닝에 두 차례나 나온 세이프티 스퀴즈 번트가 과연 야구의 불문율에 어긋나느냐는 하는 점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필자는 한 이닝 두 차례 스퀴즈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스퀴즈는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8번 타자 최경철 타순이었고, 두 번째 스퀴즈는 3-2로 겨우 역전시킨 상황에서 2번 타자 박경수 타석이었다. 충분히 스퀴즈를 댈 타자들이었고, 충분히 스퀴즈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사실 이날 TV 해설자가 너무 큰 목소리로 “정말 생각지도 못한 스퀴즈였어요!”라고 소리쳐서 그렇지 웬만한 트윈스 팬이라면 두 차례 모두 스퀴즈가 나올 수 있다는 예감을 가졌을 것이다. 최경철은 그런 상황에서 벤치의 작전이 없어도 세이프티 스퀴즈를 여러 차례 자발적으로 댄 경험이 있는 선수였고, 박경수도 비슷한 성향의 타자였다. 베어스가 예상을 못해 대처를 못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물론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 아닐 수도 있다. 두산의 해명처럼 마야가 단순히 다음 타자더러 빨리 나오라고 손짓한 것을 양상문 감독이 오해했을 가능성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와는 별도로, 한 이닝에 스퀴즈를 두 차례 대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상황을 본 필자가 오로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논란이 아니다. 필자는 3루 주자가 미리 스타트를 끊는 수어사이드 스퀴즈가 아니었는데도, 주자들이 홈에 들어오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번트를 잘 대준 최경철과 박경수의 훌륭한 작전 수행 능력을 칭찬하고 싶을 뿐이다.

두산은 올 시즌 가장 많은 번트를 댄 팀 중 하나다. 송일수 감독 스스로가 “번트 작전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팀을 상대로 트윈스는 이 날 두 차례의 스퀴즈를 비롯해 네 번의 희생 번트를 정확하게 성공했다. 4회 트윈스는 스퀴즈로만 두 점을 뽑았고, 8회에도 무사 2루에서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며 무려 10점을 내는 빅 이닝의 토대를 닦았다. 리그에서 가장 번트가 잦은 잠실 라이벌을 맞아, 번트로 상대를 제압한 트윈스의 저력이 놀랍다. 팀의 짜임새가 느껴진다. 4강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은 이 자랑스러운 트윈스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찬사를 보낸다.

최고의 멤버 - 신들린 양상문
앞에서 언급한 스퀴즈 및 희생번트 외에 양 감독이 이날 구사한 작전은 마치 신이 들린 듯 적중했다. 8회 무사 1루에서 대주자 문선재를 내세운 뒤, 희생번트 상황에서 도루를 감행해 성공한 것도 멋졌다. 4-2 박빙의 상황, 1사 3루에서 스퀴즈 번트를 댄 경험이 있는 최경철에게 되레 강공을 지시한 것도 신기한 듯 맞아 떨어졌다. 최경철의 강한 타구는 전진수비를 펼쳤던 베어스의 내야를 멋지게 뚫었다. 이어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간 오지환은 상대 투수 정재훈의 3차례에 걸쳐 이어진 견제구를 머쓱하게 만들며 바로 도루를 성공시켜 빅 이닝의 토대를 닦았다.

사실 양상문 감독이 칭송을 받는 이유는 그가 신들린 작전을 잘 구사해서는 아니었다. 그가 대단한 점은 승패마진 -16까지 벌어졌던 팀을 이끌고 선수들을 토닥이며 마침내 5할 승률을 넘었다는 점이다. 그는 팀에게 비전을 심어주었고, 선수들 사이에서 소통과 신뢰를 만들었다. 그것이 양 감독이 보여준 진정한 감독으로서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날 양 감독은 내는 작전마저 족족 성공시키며 ‘제갈양상문’의 진면목을 그야말로 한껏 발휘했다.

모처럼 트윈스가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감독을 만난 듯하다.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트윈스 팬들 사이에서 양 감독처럼 한 목소리로 칭찬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물론 최근 성적이 워낙 좋은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필자 역시 여러 차례 이 칼럼에서 밝혔듯이,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부디 그가 야인 시절 가졌던 절치부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트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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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트윈스의 승패 마진을 플러스로 돌려놓은 양상문 감독.

OUTRO - 9부 능선을 넘다
트윈스는 이날 승리로 마침내 올 시즌 처음으로 플러스의 승패 마진을 가졌다. 그와 동시에 4강 진출의 9부 능선에 오른 느낌이다. 정말 긴 여정이었는데, 이제 그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날 오른 곳은 말 그대로 9부 능선이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부디 남은 세 경기를 잘 치러, -16에 처졌던 꼴지 팀이 마침내 포스트 시즌에 오르는 기적을 트윈스가 훌륭히 완성하기를 소망한다. 트윈스의 가을 야구 진출이 확정되는 날, 필자도 오랫동안 장롱 안에 걸어두었던 유광점퍼를 꺼내고 트윈스의 2014년 선전을 축하할 것이다.

*수은중독: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의 만루 홈런을 보고 청룡 팬이 된 33년 골수 LG 트윈스 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두 자녀를 어여쁜 엘린이로 키우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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