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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G현장] '제2의 박태환'이 나오지 않는 이유
*헤럴드스포츠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맞아 아시안게임뉴스서비스(AGNS)의 협조로 주요 현장기사를 소개합니다. 아시안게임 및 AGNS 기사에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04년 꼬마 박태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15살(중학생)이던 박태환은 자유형 400m에 출전했다. 어렸던 나이만큼 앳된 몸과 얼굴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당시의 박태환은 출발신호가 울리기 전에 물 속으로 뛰어들며 실격당하고 만다. 두 시간 동안 화장실에서 울었던 그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이후 박태환은 트라우마였던 스타트를 자신만의 강점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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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 최연소 참가자 박태환이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부저가 울리기 전 입수하는 장면.

당시 한국 수영계는 중학생 국가대표를 두고 왈가왈부 말이 오갔다. 하지만 수영연맹은 당장의 성적이 아닌 한국수영의 미래를 위해 박태환을 아테네로 보냈다. 정말이지 두고두고 칭찬을 받을 만한 옳은 결정이었다. 박태환이 아테네에 가지 않았다면 그 이후 한국 수영사를 새로 쓴 빛나는 여정에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과 같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경험’이었다. 아테네 대회가, 로마 대회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실수에 주저앉지 않고 극복해낸 것이다.

제2의 박태환에 인색한 현실
우리는 제2의 박태환을 기대한다. 혜성처럼 등장한 박태환은 어느 덧 대표팀 남자 선수 중 최고참이 됐다. 이쯤되면 슬슬 그에게 현역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를 대체할 선수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제2의 박태환'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수영연맹은 이번 대회 선수 선발에 있어서 '각 종목에서 선발전 1위 선수만 뽑아서 출전시킨다'는 원칙을 밝혔다. 이게 문제다. 아시안게임 수영은 각 세부종목 당 한 국가에서 최대 2명의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다. 한국은 스스로 출전쿼터를 줄인 것이다. 연맹에 물었더니 나름 국가대표단 운영 등에 있어 여러 이유가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더욱이 이번 아시안게임은 한국에서 열리는 까닭에 '돈문제'도 큰 이유가 안 된다. 혹시 한국의 자유형 대표들이 안방에서, 그리고 박태환의 선전으로 국민적 관심이 쏟아지는 무대에서 예선탈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서 일부러 출전쿼터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강한 의구심이 든다.

온 국민이 지켜본 것처럼 남자 계영 800m의 동메달은 박태환 덕에 딴 것이 아니다. 3명을 따라잡은 양준혁(20 서울대)이 수훈갑이었다. 양준혁은 아시안게임 선발전 자유형 200m에서 1분50초59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결과적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같은 종목의 7위에 해당한다. 연일 금, 은메달이 쏟아지고, 동메달은 감동도 없는데 7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아냥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양준혁의 경험이다. 선수가 큰 무대를 경험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자국 대회도 이렇다면 돈이 많이 드는 외국대회는 더 심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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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인천 아시안게임 자유형 100m 은메달을 획득한 박태환.


이미 시작된 박태환의 역설
더 심각한 것은 이미 시작된 '포스트 박태환 시대, 한국 수영의 침몰'이다. 이번 대회에서 ‘박태환 의존증’은 여파는 심각했다. 예전 아시안게임에서는 박태환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메달을 땄다. 최윤희, 정다래 등 금메달리스트도 있었다. 지난 광저우 대회만 해도 최규웅, 장규철, 서연정, 최혜라가 개인 메달을 획득했고, 4개의 단체전에서 은1, 동3를 따냈다. 그런데 인천에서는 박태환과 관련이 없는 메달은 양정두(남자 50m 접영 동메달)가 유일하다.

박태환 선전에 가려진 이런 비극은 이미 선수들이 잘 알고 있다. 장규철(22 강원도청)은 접영 100m 예선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이나 싱가포르, 홍콩 등 수영 불모지였던 국가에서 메달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기량 향상과 더불어 중국 선수의 귀화로 인해 수영에서 메달을 따는 국가들이 많아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가져가는 메달이 예전에는 한국의 몫이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일본의 메달 수는 전 대회와 비교해서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성적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유망주라면 최대한 큰 대회에 자꾸 내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수영에 미래는 없다. 한국수영이 박태환 신드롬에 눈이 멀어 정말 중요한 기본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제 박태환의 그늘에서 벗어냐야 한다. 그것이 진정 박태환에게 감사하는 길이기도 하다. [문학(인천)=김민성 기자(AGNS)]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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