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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뷰] 직설적이고 익살스럽게 현실 마주하기...‘족쇄와 코뚜레’

  • 기사입력 2019-10-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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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I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박정선 기자] 한국 사람들이 유독 드라마에 몰입하는 이유가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곱게 크는 법이 없다. 갖은 고난이 발목을 잡고, 그 고난에 허우적거리면서 먹고살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이런 생업에 주인공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항상 다르기만 하고, 무언가에 늘 발목 잡혀 사는 삶.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본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족쇄와 코뚜레’는 직설적이고, 익살스럽다. 독특한 제목의 이 전시는 철저히 작가들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꿈을 가진 모두가 이 기획전의 당사자이자 주인공이 된다. 전시명 ‘족쇄와 코뚜레’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현실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족쇄)과 원치 않는 생업(코뚜레)을 뜻한다. 전시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우리네 삶을 익살스럽게 풀어냈다.

불투명한 앞날을 대하는 첫 번째 비법은 ‘모르겠으면 일단 견디고, 버티고, 전진하기’이다. 그래서 첫 번째 섹션은 ‘묵묵꿋꿋’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시장 1층은 ‘웃으세요, 그대로 버티세요’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전시장을 들어서면 여러 개의 다리가 흐느적거리는 거대한 기계 생명체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나무 보드에 슬며시 발을 올리고 균형을 잡기 위해 쉼 없이 발을 움직여야만 비로소 괴생명체의 팔다리가 꿈틀거린다. 쉬는 시간은 없다. 묵묵히, 그리고 꿋꿋이 계속 움직여야 한다.

‘묵묵꿋꿋’이라는 주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시도 한 쪽에 마련됐다. ‘버티기 수련원’이다. 아슬아슬한 나무판자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조각상, 줄지어 엎드려뻗쳐 자세로 버티는 조각상, 비틀대면서도 용케 벽에 기대어 오늘을 버티는 조각상 그리고 쓸모가 다한 잘린 머리통들이 어시장 생선 대가리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버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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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I미술관 제공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둘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마련한 섹션은 ‘덕업일치’다. 2층에 올라서면 한 쪽 벽면에 10m에 달하는 벽화가 자리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동호대교 위의 익숙한 교통체증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모두가 ‘생업’이라는 코뚜레에 꿰어 정신없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그 옆으로는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캐릭터가 눈길을 끈다. 행복과 의욕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형상화한 캐릭터다. 도파민에 흠뻑 취한 뇌를 끌어당기며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공간 곳곳에 갖가지 형태로 숨어 있는 도파민 캐릭터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 번째 섹션은 ‘공수겸장’이다. 작업과 생업이 균형을 이루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이번 섹션은 말 그대로 ‘둘 다 잘하기’다. 전시장 한 편에 가상의 ‘Jang's Museum’이 마련됐다. 세계적인 연예인 작가 ‘카티 최’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카티 최는 고기 팔 듯 그림을 잘라 팔고, 구석에서 이월 작품을 떨이 판매한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작가의 개인전인데, 장 관장의 인맥과시용 사진들이 판을 친다. 이력은 다 ‘가짜’고, 인맥도 ‘가짜’다. 결국 ‘모두 잘하기’는 허상에 불과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커튼으로 가려진 문이 있는데, 이를 헤치고 들어가면 높다란 천장부터 바닥 가득 글씨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의 ‘욕망’과 관련될 글을 모아 놓은 것인데, 한가운데 준비된 원반 위에 올라 균형을 잡으면 암흑에 휩싸인다. 잠시의 평정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는 이전의 섹션들과 마지막 섹션인 ‘퇴색금지’의 브릿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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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CI미술관 제공


마지막 섹션은 ‘퇴색금지’다. 생업에 꿰여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꿈은 증발하고 변질하기 십상이다. 족쇄와 코뚜레에 사로잡혀 있는 삶이지만, 우리는 꿈을 간직하고 스스로를 지켜나가야 한다. 격자로 짠 나무 선반에 수백 개의 비석이 줄지어 서 있다. 수백, 수천 권 책에서 ‘나’자만 긁어내어 말 그대로 나를 찾아 모아 하나의 비석을 만들고, ‘나’ 외의 다른 글자들로 여러 개의 비석을 만들었다. ‘나’를 모시는 납골당인 셈이다.

설치와 회화가 어우러진 이번 전시 ‘족쇄와 코뚜레’에는 김동현, 도파민최, 박수호, 신민, 오순미, 장하나, 최호철, 허보리 작가가 참여했으며 이달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관람 가능하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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