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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이 장면] ‘왕남’ 김상경 VS 장영남, 왕이 될 수 없는 자들의 아이러니한 기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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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방송화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장면이 모여 드라마를 만든다.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상황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대사도 모두 장면에 담긴다. 이에 작품 속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면을 포착한다. -편집자주

■ 장면 읽기

대비(장영남), 대전에서 도승지 이규(김상경)를 기다리고 있다.

대비: “당장 옥새(玉璽)와 병부(兵符)를 내게 가져오시오”
이규: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비: “몰라 묻는게요?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이라고, 주상과 중전이 모두 궁궐을 버리고 나갔으니 나라도 이 나라 종사를 책임져야 하지 않겠소? 혹시 모를 환란에 대비하려는 것이니 두 말 말고 가져오시오”

(중략)

이규: “송구하옵니다. 대비마마께서 이 나라 제일 가는 충신이시라는 것을 소신 몰라뵀습니다”대비: “도승지 말이 꿀처럼 단데 내 눈에는 날카로운 검이 보이는 듯합니다. 혹 내가 하는 말을 의심하는 게요?”
이규: “대비마마의 충심을 제가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대비전을 위해 소신도 간언을 올리고자 합니다”
대비: “그게 무엇이오”
이규: “전하께서 아니계신 틈을 노려 이렇게 대전을 범하고 옥새와 병부를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는 우(愚)는 다시 범치 마십시오. 아무리 대비전의 충정(忠情)이라 하여도 이런 무례하고 무도한 행태는 전하의 신하된 자로서 제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 오늘의 장면
작품 제목: tvN ‘왕이 된 남자’
방송 일자: 2019년 2월 12일 (11회)
상황 설명: 하선(여진구)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폐서인을 자처한 중전 유소운(이세영)을 따라 궁을 나선다. 이를 눈치 챈 대비는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옥새를 빼앗고자 이규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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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방송화면)



■ 그래, 이 장면
‘왕이 된 남자’는 제목부터 아이러니한 드라마다. ‘왕이 된다’는 것은 애초에 ‘왕이 아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왕이 된 남자는 광대 하선을 뜻한다. 그는 나라의 임금 이헌(여진구)과 꼭 닮은 얼굴을 가진 덕분에 그의 대리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 지난 8회, 진짜 왕 이헌이 도승지 이규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따라 광대가 진짜 ‘왕이 된 남자’로서 움직이기 시작한 가운데, 왕이 아닌 자들의 싸움 역시 한층 치열해졌다.

‘왕이 된 남자’ 11회, 임금의 계모 대비와 신하 이규의 살벌한 기싸움도 그 중 하나다.

앞서 하선은 중전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 설상가상 이헌의 죽음까지 알아버린 중전은 죄책감에 궁을 떠났다. 이에 하선이 그를 붙잡기 위해 따라 나가면서 대전이 비었다. 궁의 최고 권력자가 부재하니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세력이 활개를 치는 것도 당연하다. 대비가 의붓아들의 출타를 확인하고 옥새와 병부를 내놓으라 명한 까닭이다.

그런 대비를 막아선 인물은 이규였다. 대비는 궐내 큰 어른이자 충신을 자처하며 자신이 임금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규는 대비의 속을 뻔히 알고 있다는 듯 “아무리 대비전의 충정이라 하여도 이런 무례하고 무도한 행태는 전하의 신하된 자로서 내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대비와 이규의 싸움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절대 왕이 될 수 없는 자들이 둘 중 누가 그 권력을 손에 쥘 것인지를 두고 다투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왕의 어머니라 할지라도 궁궐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비는 눈엣가시같은 의붓아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앉히기 위해 수를 쓴다. 이헌에게 독약을 주고 하선을 진짜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규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아무리 원대한 꿈을 품은 인물이라 할지언정 조선시대 신분의 벽은 공고하다. 한번 ‘신하’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규는 궁의 모든 것이 서툰 광대를 데려다 놓고 자기 입맛에 맞춰 조정을 움직이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왕이 된 남자’의 시청자들은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 추측컨대 대다수가 이규의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바로 ‘명분’ 때문이다.

대비가 왕위를 탐하는 ‘명분’은 하나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다. 권력을 잡아 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오직 권력을 쟁취하는 것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다. 무엇보다 이 권력욕은 역모죄로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을 죽인 이헌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반면 이규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이란 탄탄한 힘을 갖춰 온 백성이 풍요롭게 지낼 수 있는 나라를 뜻한다. 2019년을 사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이규의 이상과 이를 실현하려는 의지와 결단력이 꽤나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규의 행동이 진정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이규는 자기 손으로 군주를 저버리고 이를 숨기기까지 했다. 이것만으로도 대역죄이다. 게다가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하선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고 있다. 대전을 찾아와 옥새와 병부를 내놓으라고 호통 치는 대비, 그에 앞서 이헌을 손바닥 위에 놓고 권력을 휘두르던 좌의정 신치수(권해효)의 모습과 이규의 지금이 일부 겹쳐 보이는 까닭이다. 이에 앞으로 이규가 하선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을 취하는지에 따라 이 인물이 믿는 신념의 타당성 역시 판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대비와 이규의 대면 장면은 배우들의 소름돋는 연기로 몰입감을 상승시켰다. 극 중 대사처럼 ‘꿀처럼 단 말과 달리 날카로운 검을 품은 눈빛’으로 대비를 바라보던 김상경부터 그 앞에서 제 욕심을 감추고자 가증을 떨다가도 이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던 장영남의 카리스마까지 과연 ‘명품 배우’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한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왕이 된 남자’ 11회는 전국 유료플랫폼 가입 가구 시청률 9.3%를 기록,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수성했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은 10.6%까지 치솟았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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