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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변산’ 박정민 “원톱 부담감에 과부하…얼굴빛까지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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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인 것 같아요”

불과 6개월 전이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개봉 당시 박정민은 피아노라는 도전 과제는 잊고 이병헌 동생 역할이라는 사실에 출연을 결정했던 것을 반성했다. 의욕이 앞섰던 선택이라며 엄살을 부렸던 박정민은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피아노 천재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리고 그 엄살은 이번 영화 ‘변산’에서도 이어졌다.

‘변산’은 무명 래퍼인 학수가 자신을 짝사랑했던 선미(김고은)의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이번에도 박정민은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이준익 감독을 믿고 선뜻 ‘변산’을 선택했다고 했지만 래퍼 학수 역을 맡아 프로 못지않은 랩 실력을 뽐낸다. 박정민의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대 장면에 놀랐다. 무대발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를 보는 그 어떤 분보다도 가장 오그라드는 게 날 것 같아요(웃음) 무대발이 장난 아니라고 하시는데 잘 모르겠어요. 창피하고. 내 주업이 아니라 더 그래요. 마지막 장면은 보조출연자 300명 앞에서 랩을 했어요. 나도 어색하고 그분들도 어색하죠.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서로 합이 맞아가더라고요. 하다 보니까 신나게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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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만이 내 세상’ 때 피아노가 너무 힘들어서 그 다음엔 조금은 편한 선택을 할 만한데 이번엔 랩이네요.

“피아노보다 힘든 건 없겠지 싶었는데(웃음) 진짜 고민하고 선택을 했었어야 했는데 이준익 감독이 하자고 해서 대뜸 하게 됐죠.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땐 랩은 크게 상관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지르고 보는 성격인 것 같아요. 고민은 많은데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을 해버려요”

▲ 랩을 배우려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줘야 하잖아요. 얀키 앞에서 처음 랩 보여주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에요(웃음) 이준익 감독이 얀키 형에게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정민이 랩 한 번 해봐야 되는 거 아냐’라고 하는 거예요. 마치 하기 싫은데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것처럼 랩을 했죠. 도망가고 싶었어요. 얀키 형은 참 예의바른 아티스트에요. 가능성이 있다고 해주는데 더 비참한 거 있잖아요”

▲ 랩 배울 땐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얀키 형이랑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도 시간이 부족했어요. ‘쇼미더머니’ 3차까지 나올 노래를 만들어야 했는데 가사를 쓰면서 연습을 병행했죠. 영화에서 랩은 주가 아니라 수단이에요. 그 수단이 가장 잘 해야 할 몫은 가사에요. 학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니 가사를 잘 쓰는 게 가장 중요했죠. 학수의 마음과 상황이죠. 트랙리스트를 보면 트랙이 넘어갈수록 학수의 고백 정도가 구체화되고 깊어지게 가사를 써야했어요. 구체화 되고 꾸며내지 않은 이야기를 해버리는 대상도 필요했어요. 학수가 정면을 바라보면서 내적으로 성숙해졌을테니 랩도 달라진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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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을 떼어놓고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장 끌렸던 지점은 뭐에요?

“대사들이 웃겼어요. 정서, 감정도 다 중요한데 대사가 좋은 영화들이 좋아요. 사실 ‘변산’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근데 몇몇 대사들이 좋은 의미로 어처구니가 없어요. 슬픈 신인데 대사는 너무 웃기고. 그런 점에 반해서 본 것 같아요”

▲ 학수를 보면서 직접 쓴 책인 ‘쓸만한 인간’의 박정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쩔 수 없는 게 학수랑 박정민은 꽤 닮아있는 사람이에요. 여타의 캐릭터들 보다는 내가 가진 것들을 많이 부여하는 게 필요했던 역할이었죠. 책은 나의 흑역사들이 나와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학수에 묻어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물리적 고향이 없더라도 금의환향 콤플렉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정민에게도 금의환향 콤플렉스가 있나요?

“누구나 그런 감정이 드는 공간이나 인물이 있는 것 같아요. 성공해서 돌아가고 싶은 곳이 나한테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에요. 기숙사 학교를 다녔는데 그 안에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학업 분위기를 저해하는 애였으니 학교의 애물단지였죠. 그 안에서 친구들하고 공부도 안하고 떠들고 단편 영화 찍고 그랬어요. 친한 친구들이야 내가 연기를 하겠다는 걸 응원은 해줬지만 다른 친구들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들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 학수처럼 흑역사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 같아요?

“책에 나왔던 것들은 흑역사라고 하지만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과거죠.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집에서 우울해지고 눈물이 나고 하는 그런 것들은 따로 있어요. 없었던 일로 숨겨놓고 사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에 올라올 때가 있어요. 숨겨두고 살죠. 정면 돌파는 하고 싶지 않아요. 없었던 일처럼 되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 촬영 후반부엔 건강이 안 좋아 보일 정도로 힘들어보였다고 하던데 원톱 주연에 대한 부담감 같은 건가요?

“정확히 맞아요. 선배들이 멋있게 현장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해야지 생각을 했어요. 근데 막상 현장에서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랩 써야 되고 연습도 해야 하고 사투리에 탭댄스까지 하려니까 과부하에 걸렸어요. 현장에선 즐겁게 찍긴 했는데 안에선 부글부글 했어요. 스트레스를 누르고 있으니까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어요. 그때 (김)고은이가 스태프들 챙기고 많이 도와줬어요. 이준익 감독은 쓸데없는 책임감 가질 필요 없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게 단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준익 감독은 자기 방에 누구를 들이지를 않으시는데 한번은 회식 끝나고 방으로 부르셨어요. 뭐 잘못했나 싶었는데 ‘넌 이 영화로 주인공이 됐고 앞으로도 주연을 해나갈 거다. 근데 지금과 똑같이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변했다고 한다. 더 겸손해지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되게 고마웠어요. 30년 넘게 이 일을 하신 분이 해주니까 진리의 말이잖아요. 이런 기회도 주셨는데 태도까지 이야기를 해주시니까 감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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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 시작할 때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나요?

“잘 될 줄은 몰랐으나 잘 되고 싶었어요. 될 놈만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쁜 말로 하면 패배 의식 같은 게 있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에 했던 작품들을 잘 봐주셔서 다행히 벗어나고 있는 과정이에요. 예전에 류승완 감독과 ‘신촌좀비만화’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좋아하는 감독이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개봉을 크게 하지도 않았고 본 관객도 얼마 없어요. 심지어 DVD도 안 나왔거든요. 그걸 이준익 감독이 시사회에서 보셨어요. 그걸로 날 알게 되고 ‘동주’에 나오게 됐어요. 그런 것처럼 옛날에 성과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이렇게 누군가는 봐주니까 잘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면에선 무섭기도 하고요. 제대로 못했을 때 내 작품을 본 분들에겐 박정민은 좋지 않은 배우로 각인될 수도 있으니까요. 매사에 진지하게 임해야겠다고 생각해요”

▲ 책은 또 낼 생각이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책 낼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연예인이 쓴 책이잖아요. 책을 쓰는 게 정말 힘든 일인데 연예인이라는 걸 이용해서 내는 거니까 정말 책 내는 걸 원하는 분들에겐 허탈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찌됐든 연재한 글이 있었고 그 글을 봐주신 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낸 건데 다시 배우 이름으로 책을 내서 다른 분들에게 허탈감을 주고 싶진 않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다른 이름으로 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누군가가 허용해 준다면요(웃음) 내가 쓴 글이 훌륭하진 않지만 배우가 쓴 글로 평가를 받으니 나한테도, 글에게도 안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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