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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희, 한국 미인의 전형 ‘큰 별이 졌다’
-최은희, 16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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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가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사진=OSEN)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은수 기자] 원로배우 최은희가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최은희는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고 최은희는 지난 2006년 4월 11일 남편인 신상옥 감독 별세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 최근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을 장악했다. 대표작으로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이 있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인연을 맺은 최은희는 1954년 결혼에 이른다.

고인은 신상옥 감독과 찍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130여 편에 출연하는 등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남편 신상옥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의 발전 이끌던 최은희는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다. 이후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북한의 영화 발전도 이끌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한반도 영화계를 이끈 큰 별 최은희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이며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최은희 별세 소식에 여론은 고인을 추모했다. 인터넷상에는 “브라운*** 저는 30대입니다. 그래도 유명한분이시죠. 인생의 굴곡이 있으시지만 영화만 사랑하셨던 그분이시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yj7**** 김정일이가 납치해서 탈출하고 정말 파란만장한 삶 보내셨습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yyho**** 벙어리 삼룡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국 미인의 전형이었지요. 이제 그 아름다운 모습을 그곳에서 찾으셨겠지요. 명복을 빕니다” “ush0**** 그동안 좋은 연기 보여주셔서 감사했습니다...다음 생에도 꼭 좋은 배우로 태어나셔서 저희들 기억 속에 남는 배우가 되어 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이 줄 잇고 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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