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인터;뷰] 한지상, 살리에리로 사는 한달 "질투에 희열 느낀다"
이미지중앙

뮤지컬배우 한지상(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희윤 기자] “관객 분들에게 MC로서 다가가고 싶었어요”

한지상은 얼마 전까지 ‘모래시계’의 태수였다. 그는 선 굵은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고는 하루아침에 ‘아마데우스’로 연극무대에 복귀했다. 그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는 완벽한 살리에리로 변신한다. 평범한 자들의 대변자가 된 그는 드라마틱한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 평범함 가운데 나를 찾다

한지상이 연기한 살리에리는 무대에서 퇴장이 거의 없다. 그는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150분을 꽉 채우는 엄청난 대사와 연기로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살리에리는 할 말이 많은 배역이에요. 이야기꾼이죠. 대사량이 상당해요. 애초에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담감을 가지진 않았죠. 아무리 대사가 많아도 상황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 지점에 동화되면 뼈대가 외워져요. 이후 단계적으로 각각 부분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니까 어려움은 없었죠”

그의 말마따나 살리에리는 할 말이 많다. 모차르트에 대한 경탄과 번민을 느끼는 살리에리는 영광스런 1등에 가려진 초라한 2등의 삶을 풀어놓는다.

“학창시절에 2등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 수석으로 입학한 친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죠. 모든 걸 받아 적다보니 교과서는 항상 지저분했어요. 반면 1등인 친구는 요점만 적어 깔끔했죠. 이런 게 살리에리의 대사에도 있어요. ‘그의 악보는 너무 깨끗했어요. 수정된 곳이 하나도 없었죠’ (웃음) 덕분에 늘 2등이었어요. 1등을 통해 느끼는 2등의 질투심은 허탈할 순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한 정서잖아요. 20년이 넘은 시점에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내 삶 자체가 평범했죠. 평범함이란 보편성의 다른 말이자 익숙함의 대명사잖아요. 살리에리가 이해되죠. 그래서 살리에리는 평범한 나 자신으로 승부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배우로서의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배우는 무대 위 역할만으로도 특별해질 수 있었지만 그는 연기에 흠뻑 취해 스스로 평범하지 않은 면들을 발견한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연극연기에 희열을 느끼고 즐거워했죠. 연극을 통해 삶에 있어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들을 느꼈어요. 반면 뮤지컬을 하며 처음 배우로서의 평범함을 알게 됐죠. 연기, 노래, 춤 이 세 가지를 전부 가지지 못해 납득이 안됐어요. 다른 배우들 같은 느낌도 안 났고, 실력이나 경력, 관객동원력도 없는 편이었죠. 힘력(力)자 들어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웃음) 그때부터 ‘앞으로 평범한 뮤지컬배우로 살겠구나’하고 느꼈죠. 조연도 오래 해왔지만 내게서 처음 평범함이란 걸 알게 됐을 때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점차 뮤지컬에 적응해가며 평범함 가운데 진짜 나 자신을 찾게 됐죠”

그는 뮤지컬을 시작하고 7~8년이 됐을 때 스스로의 특별함을 발견했다. ‘넥스트 투 노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이자 관객들도 그를 기억하게 됐다. 이런 날이 오기까지 그의 평범한 시간들은 자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무대 위 그는 명실공히 완벽한 살리에리다.

이미지중앙

뮤지컬배우 한지상(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 끊임없는 사람공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함께 있을 때 의미가 있어요. 모차르트는 누구나 꿈꿔볼 수 있는 로망 캐릭터죠. 반면 살리에리는 현실을 대변해요. 이 재능과 평범함이 같이 있으면 모차르트는 재능이 부각되고, 살리에리는 정체성이 생기는 거죠. 만약 서로를 몰랐다면 각자 자신의 재능과 평범함을 모른 채 지나갔을 거예요. 그럼 아마 객관적인 나를 발견하지도 못했겠죠. 결국 대칭점처럼 서로 같이 있을 때 빛이 나요”

한지상은 처음 살리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평범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모차르트와 비교되지만 캐릭터 자체가 평범한 건 아니다. 단지 관객들에게 평범한 친구로 다가갈 수 있도록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는 연기자가 아닌 동반자라는 관점에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살리에리는 관객들에게 브리핑하는 장면이 많아요. 물론 인물들과 대화할 땐 연기를 펼쳐야 하지만, 관객들에겐 명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MC 한’이 되고 싶었죠. 그래서 관객 분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어미들을 바꾸고 유머코드를 삽입했어요. 단순한 연기가 아닌 배우와 관객이 함께한다는 걸 인지시켜주고 싶었죠. 그래서 어떨 땐 살리에리를 평범 이하로 만들기도 했어요. 친근한 살리에리를 통해 관객 분들이 묘한 든든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는 친근한 접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상대배우만을 봤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재능을 부러워해 번민하는 만큼 상대배역의 어떤 면을 질투할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우러러 보는 동시에 질투를 통해 사악한 계획을 품기도 해요. 그렇지만 결말에선 레퀴엠을 통해 합작하기도 하죠. 이처럼 음악적인 영감을 통해 서로 합일되고 모든 게 용서되는 지점이 있어요. 서로를 질투하다가도 끝에 가선 영감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갑작스레 합일되는 묘한 딜레마가 있는 거죠. 너무 미웠지만 화해가 된다거나 싫다가도 좋은 감정의 딜레마에 대한 관찰을 많이 했어요. 또 살리에리로서 ‘저 정도 급은 되니까 싫어하지’라는 묘한 자부심을 표현해보려 했죠”

이러한 연기를 펼치기 위해 그는 사람공부를 놓지 않는다.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 역을 맡은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그들의 천재성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조정석 형은 첫 뮤지컬을 함께 했어요. 전보다 더 대배우가 된 형과 오랜만에 합을 맞추는데 속은 소박하고 훈훈한 그대로였죠. 사실 이런 겸손한 모습조차도 살리에리가 볼 땐 천재 같잖아요. 일부러라도 형을 대입해가며 연기를 연습했어요. 형의 겸손이 주는 인간미를 관찰해보면 모차르트로 보고 몰입하기도 쉬웠죠. 또 김재욱 배우는 외모가 샤프하지만 속은 너무나 훈훈하고 아름다운 휴머니즘과 우아함이 있어요. 여기에 김성규 배우만의 절대적인 풋풋함이 있어 천진난만함이 주는 천재성에 집중했죠. 셋 다 모차르트 같아요”

그는 캐릭터를 위해 상대배우들의 매력과 천재성이 표출될 만한 지점들을 찾아보고 연구한다. 계속 쳐다보고 끈을 놓지 않기에 그는 더 완벽한 배역을 소화해낸다.

이미지중앙

뮤지컬배우 한지상(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 재능과 평범의 공생

“요즘 질투심이 많이 극대화돼있는 상태에요. 여태까지 차 욕심이 없었는데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조)정석형을 보면서는 겸손도 천재냐고 장난치기도 해요. 그럼 또 잘 받아주죠. 받아주는 것도 천재 같아요. 이렇듯 요즘 질투에 희열을 느끼고 있죠. 질투가 맛있어요. 굳이 절제하거나 떨쳐내고 싶지 않은 마력이 있죠. 근데 별걸 다 질투하다 보니까 자꾸 이러면 진짜 살리에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을 내리는 4월 29일까지만 질투해야죠. 안 그럼 이상해질 것 같아요 (웃음)”

그는 누구보다 평범한 살리에리이기를 원한다. 일상에서 질투는 굉장히 평범한 정서이기에 많은 관객들이 살리에리를 보며 공감하길 바란다.

“‘찌질함’이란 단어를 좋아해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면이 있잖아요.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들을 건드려보고 싶었죠. 다만 평범함에 대해 당당해져서 그런 호흡을 관객들과 함께 나눠보자는 확신이 있었어요. 내 안의 평범함을 표현해 모두가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싶고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하죠”

그는 ‘아마데우스’를 통해 살리에리를 연기했지만 배우로선 재능과 평범을 모두 맛봤다. 그는 두 가치의 공생을 강조한다.

“사실 배우로서 필요한 방향성에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면을 모두 갖고 있어야 시너지가 나요. 평범한 살리에리의 정서로 관객들에게 공감을 줘야 하죠. 이걸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하는가가 관건인데, 여기서 모차르트의 상상력이 없으면 평범함에 머물러요. 평범함을 밑바탕으로 재능을 지향해야 하죠. 둘 중 하나라도 과부하가 되면 공감을 얻지 못해요. 너무 독특해서 외면 받는 작품도 있고 너무 평범해도 마찬가지죠. 둘이 시너지가 나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져요”

그는 배우로서 호불호가 많았다면 지금은 계속 호로 옮겨가게끔 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표현한다.

“도전을 두려워한 적은 없어요. 준비의 정도에 대한 문제였죠. 물론 의욕만 있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배우는 정규직이 아니잖아요. 매번 오디션에 응하고 합격점을 받고 또 시작해야 하죠. 작품을 하다가 중반부가 넘어가면 또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적인 지점들이 있어요.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 부분이죠. 앞으로도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계속해서 도전할 거예요. 도전에 있어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결코 굴하진 말아야죠”
cultur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