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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뷰] 연극 ‘미저리’ 사랑의 형태에 관한 짤막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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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저리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희윤 기자] 아름다운 사랑과 불건전한 사랑의 기준은 뭘까. 그 둘 사이에는 정확한 경계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하지만 사랑이 꼭 하트 모양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어떤 사랑은 네모나게 각져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랑은 둥글다. 또 어떤 사랑은 가시가 마구 돋쳐 있다. 사랑의 형태는 일률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랑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해도 소설 속 ‘미저리’를 갈망하는 애니의 사랑은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병적인 집착이다. 일방통행 사랑의 끝을 보여준다. 마침내 애니는 허상 속 인물에서 자신이 동경하는 소설가에게로 애정의 화살을 돌린다. 사랑을 핑크빛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연극 ‘미저리’는 스티븐 킹의 동명소설과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인기 소설 ‘미저리’의 작가 폴 쉘던을 동경하는 팬 애니 윌크스의 광기 어린 집착을 담은 스릴러다.

작품의 중심인 애니는 외로움의 끝에 선 사람이다. 폴과의 관계에서 오는 애니의 외로움과 거기서 파생되는 사랑과 집착이 표현된다. 애니는 자신이 꿈꾸던 존재 폴을 만나 설렌다. 넘버원 팬과 넘버원 작가의 만남. 하지만 관계는 금세 변해간다. ‘미저리’라는 서사 속 존재를 사랑하던 여자는 곧 실제 남성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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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저리



“오, 폴” “사랑해요 폴”하고 말하던 애니. 폴의 정신세계와 영감을 사랑하는 애니는 이 순간만큼은 진실한 내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애니의 사랑은 기복이 심하다. 화가 나는 지점이 일관성이 없고 어딘가 종잡을 수 없다. 애니는 자신이 정서적으로 침해받는 순간이 다가오면 끔찍이 아끼던 사랑을 산산이 부서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기분이 풀리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돌아본다. 잔혹한 어린 아이 같다. 순수하기에 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랑의 이중성을 표상한다.

문제는 애니에게서 자신의 폭력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애니의 사랑의 당사자는 미칠 노릇이다. 폴은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또 다시 부러뜨리는 잔악무도한 여자의 손아귀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애니에게선 사랑의 그림자따윈 찾아볼 수 없다. 폴의 눈에 비친 애니는 괴물일 뿐이다.

이처럼 모든 사랑의 형태는 또 다시 관점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그렇기에 사랑을 일률적으로 재단한다는 건 무리가 뒤따른다. 모든 사랑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작품은 권선징악의 무드를 따르지만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는다.

무엇보다 연극 ‘미저리’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 편의 심리스릴러 보듯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기서 무대는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회전하며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처럼 표현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극 자체의 요소로 정면 돌파한다. 덕분에 공간 활용 면에서의 효율성과 서사의 긴장감을 모두 획득한다.

연극 ‘미저리’는 오는 4월 15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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