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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태죄 is] ②"신고 안할테니 돈 좀 줘" 2차 피해 노출된 여성들
낙태, 이를 죄로 치부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최근 낙태죄 폐지를 두고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청와대까지 움직였을 정도로 논쟁은 뜨거웠다. 낙태죄 유지 측은 생명 존중을, 폐지 측은 자기결정권을 이유로 든다. 양측의 입장엔 나름의 일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의 주체들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낙태를 경험한 한 여성의 말이 떠오른다. “그 어떤 여성도 낙태를 기뻐서 하는 이는 없다”고. 우리는 이 여성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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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여성민우회, 혜영)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아이는 둘이 만들었는데 책임은 혼자 지라니..”

A씨는 교제하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뜻하지 않는 아이를 가졌다. 둘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렇기에 고민은 깊었다. 결국 A씨와 남자친구는 오랜 고민 끝에 낙태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는 결혼 후 새로 갖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A씨는 인생 처음 낙태를 하게 됐다. A씨는 몰랐다. 이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줄은. 남자친구는 돌연 A씨를 낙태한 여자라 낙인찍으며 비난했다. 남자 측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결혼은 없던 일이 됐다. 이 일로 A씨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비단 A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수두룩하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입들이 하루아침에 협박의 말들을 쏟아낸다. 아이는 함께 만들었는데 책임은 여성만이 져야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낙태죄는 여성과 의사, 조산사 등 의료인만을 처벌 대상으로 한다. 남성은 대상이 안 된다.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법에서도 수술 시 남성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협박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낙태 과정 중 남성에게 협박 등을 당해 2차적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사연을 짚어본다.(본 사연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제공 받아 무기명으로 작성됐습니다.)

■“한번만 더 만나줘, 그럼 낙태했다는 거 신고 안할게”

K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1년 이상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남자친구와 가졌던 아이를 낙태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낙태할 당시 남자친구도 동의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K씨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낙태죄를 빌미로 스토킹에 가까운 협박을 일삼았다. 더욱이 남자친구가 자신의 낙태 수술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K씨는 더욱 큰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남자친구의 스토킹에도 K씨는 그 어떠한 신고도 하지 못한 채 1년을 넘게 홀로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더 이상 스토킹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의료 기록도 K씨의 눈앞에서 찢어버렸다. 하지만 K씨는 여전히 무섭다. 복사본이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사 얼굴을 보지도 못했는데 수술이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S씨는 낙태 수술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를 갖고 혼자 낙태를 결심한 그는 백방으로 병원을 알아봤다. 하지만 낙태가 엄연한 죄인 만큼 주어진 정보는 너무나 부족했다. 수술 방법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그러던 중 낙태를 해준다는 병원을 찾게 됐다. S씨는 병원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술비용으로 한 달 월급을 지불했다. 비용도 부담스러웠지만 S씨를 더욱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건 시술이 끝날 때까지 의사 얼굴을 한 차례도 보지 못한 것이다. 싸인을 하고 수술실에 들어간 S씨는 마취에서 깨고 보니까 수술이 끝난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S씨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공포가 밀려왔다. 결국 S씨는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큰 상처를 안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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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헤럴드경제 DB)


■“낙태 종용할 땐 언제고..비난은 왜 여성만 받아야 하죠?”


L씨는 대학시절 낙태를 했다. 당시 L씨도 학생이었지만 남자친구가 직업이 없던 상황이었다. 남성의 어머니가 L씨를 찾아와 낙태 수술을 하라고 종용했다. 결국 L씨는 낙태를 받으려 홀로 병원을 찾아 다녔다. 병원을 5군데나 들렸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L씨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낙태 이후에도 죄책감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L씨를 제일 힘들 게 한 건 남성과 남성의 가족들의 비난이었다. 낙태를 종용한 건 남자 측이었지만 책임은 L씨에게만 지어졌다.

■“너 낙태 했잖아, 그거 죄인 거 알지? 신고 안 할 테니 돈 좀 줘”

D씨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던 남자에게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된 D씨는 합의 하에 낙태를 했다. D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것이 협박의 수단이 될 줄은. 사랑했던 남자친구는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해 낙태죄를 언급하며 돈을 요구했다. 협박에 이기지 못한 D씨는 남자친구에게 돈을 줘야만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D씨가 마음 편히 한탄 할 곳이 없었다. 낙태가 불법은 맞으니 협박당한 사실을 혼자만 전전긍긍 했다.

■“낙태 동의 각서까지 작성해놓고..법정 다툼 불리해지자 낙태죄로 여성 고소”

C씨는 결혼식까지 올렸던 남자친구와 결국 파혼했다. 연애 과정 중 술만 마셨다하면 남자친구가 폭언과 기물파손을 일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임신했던 C씨는 아이를 위해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폭언과 폭행은 결혼 이후에도 반복됐다. 결국 C씨는 남성의 동의하에 낙태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남성은 낙태를 동의하는 각서까지 작성했다. 이후 파혼 한 두 사람은 결혼 자금으로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됐다. 남성은 소송 과정 중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C씨를 낙태죄로 고소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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