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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다영의 읽다가] 열애설 뒤 정부청탁? 음모론의 진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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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인페르노' 스틸컷)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사건이 터졌다 하면 음모론이 등장한다. 정말 진실이라면 세상이 바뀔 것 같은 음모론부터 포털사이트 검색어만 바뀌어도 등장하는 음모론까지 장르도 주연도 다양하다. 떠돌고 떠돌지만 진위여부조차 파악되지 않는 음모론. 실체는 진실일까, 허구일까?

음모론에 열광하는 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99% 허구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음모론의 주인공이 된 적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결혼해 잘 살고 있는 스타 커플의 열애를 보도했을 때였다. 긴 시간 이들의 열애과정을 취재했고 마침내 보도한 당일 피곤에 절어 한 동네 사는 후배와 퇴근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이 정차하고 새로운 승객을 태웠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혹은 나와 후배처럼 일적인 관계일 수 있는 여성 두 명이 우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일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앞에 앉은 여성 중 한명이 말했다.
“오늘 A랑 B 열애난 거 봤어?”
“응. 완전 충격이더라. 둘이 사귈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그치 그치. 근데 그거 알아? 정치 쪽에서 C 사건 터지니까 그거 막으려고 일부러 낸 거래.”
“정말?”
“응. 정부랑 언론사가 다 긴밀히 주고받는 거래. 이번 사건도 정부 쪽에서 던져준 거 날짜 맞춰서 낸 거라더라.”
“아 말도 안돼. 연예인은 그럼 가만히 있나? 연예인만 피해보는 거잖아.”
“돈 받았겠지. 특혜를 약속받았거나. 그런 게 한 두 개가 아니래. 전에 그 D랑 E 있지? 걔네 열애도 날짜가 절묘해. 정치사건 무마하고 사람들 시선 돌리려고 낸 거야.”

가만히 듣다 후배 얼굴을 봤다. 후배도 날 보고 있었다. 아마 후배와 나의 표정은 똑같았으리라. 말 그대로 ‘빵’ 터졌다. 우리가 오랜 기간 준비했고, 전날 밤을 새 기사를 썼고 아침에 내보내 세간을 들썩이게 한 열애에 정치인 연락이라곤 없었다. 유명한 방송작가가 소스를 줬고 취재에 돌입했다. 양측 소속사의 난감한 입장을 들어야 했지만 정부의 협박이나 청탁 같은 건 없었다. 소속사가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너무 쿨하긴 했는데 혹시 우리 대표는 정부의 연락을 받았던 걸까? 그럴 리가. A와 B의 열애 귀띔을 받은 건 한 달도 족히 넘었다. 연예부가 기사를 준비하는 데에 딜레이 되거나 앞당겨지는 무리한 날짜 조정 같은 건 없었다. 매일 A와 B에 매달렸던 사람으로서 장담하건데 누군가 음모를 꾸밀 틈도 없었다. 더욱이 앞 사람들이 얘기하던 C 사건은 미리 날짜를 맞춰 터져 나올 수 없는 사건이었다. 후배와 나는 마주보고 킥킥대면서도 차마 처음 보는 타인에게 변죽 좋게 말을 걸어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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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 표지)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라는 책으로 중국 베스트셀러 작가와 저명한 음모론자를 저격한 톄거(본명 천린쥔) 역시 음모론을 믿지 않는 부류다.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는 세계를 지배하는 비밀조직 프리메이슨, 세계대전을 일으킨 배후세력, 미국 금융을 둘러싼 음모론, 중국 백신에 대한 진실까지. 세계에 떠도는 음모론에 대해 다룬다. 서양문화사와 유대문화사를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는 저자는 예리하게 각종 음모론을 파고든다.

특히 톄거는 서양 근대사와 금융발전사를 해석해 중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쑹훙빙의 ‘화폐전쟁’이 표절이라 규정한다. 미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돈의 지배자들’이란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가져다 베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지배자들’에 신빙성은 있을까? 진실은 아니다. 미 연방준비은행(FRB) 음모론으로 떠돌아 다니는 의혹들의 진실은 대학 교재에 상세히 명시돼 있을 정도다. 공부하지 않은 엄청난 상상력이 그럴싸한 음모론을 만들어낸 셈이다.

톄거는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를 통해 세계 주요 음모론들을 이런 식으로 파헤쳐간다. 꽤 신빙성이 있어 ‘이게 사실인가’ 싶은 음모론자들의 주장을 먼저 소개하고 그 음모론의 실체를 조명한다. 어떤 음모는 외국 사이트에서 등장하는 것들이 각색돼 옮겨오는 것들이다. 이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인터뷰를 하고 인터뷰 말미에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후원금이 필요하다”고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음모는 작가마저도 믿을 뻔했지만 황당무계한 외계인 연관설로 흘러가기도 한다. 톄거는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자신이 추적하고 파헤친 음모론의 진실을 통해 세상을 휘감은 음모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직접적인 방법은 바로 의심이다. 의구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지극히 건강한 사유다. 그런데 의심이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가 된다면 어떨까. ‘나는 의심한다’가 ‘고로 참이다’로 바뀌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같은 맥락에서 음모론 역시 철저히 냉정한 눈으로 의심해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냉정한 의심 뒤에는 분석과 본질을 들여다보는 정성도 필요하다. 적어도 갖은 이유로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휘둘리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선. 그런 점에서 톄거는 음모론의 안개에 갇힌 대중이 건전한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은 요즘 판형에 비해 조금 큰 사이즈다. 두께는 있지만 ‘음모’라는 인류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금세 읽어내려 갈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중국인이 쓴 책이다. 책 전반적으로 중국이 세계 중심인 양 중국의 상황, 예시 등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들을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흥미진진한 세계의 음모론 이면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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