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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잇 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악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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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추격자' 예고편 영상 캡처)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평범한 얼굴이 섬뜩해질 때가 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혹은 평범한 척 살아 온 이웃의 정체가 살인자로 밝혀질 때다. 그 살인은 우발적일 수도 있고, 소름끼치게 계획적인 것으로 밝혀질 때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혼돈 그 자체다. 인천 초등생 살인범에 이어 이영학이 2017년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발적 살인자들의 범행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면을 장식한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살인자가 되는가. 아주 작은 이유에서일 수 있고, 아주 사소한 계기일 수 있다. 문학이 주목한 살인자들의 세상. 인간의 본성과 보편성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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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금 뭐하는 거예요, 장리노?' '실수하는 인간' '빅 픽처' 책표지)


■ 저 정말 어쩌다 죽인 겁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장리노?’(야스미나 레자 | 뮤진트리)는 랑스 최고의 극작가가 쓴 작품으로 우발적 살인자에 집중한다. 60대에 들어선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별 생각 없이 캐주얼한 봄맞이 파티를 기획했고, 친구들과 이웃 부부를 초청해 두 즐겁게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취한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 시각, 이웃 부부 중 남편이 찾아온다. 우발적으로 아내를 목졸라 죽였다는 것이다. 그는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들이 종종 그렇듯 소심하고 순진하면서 자신을 감출 줄 모르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는 남편이 아내를 죽였고 아내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니 이것은 엄연한 범죄다. 그러나 파티 주최자인 엘리자베스는 이웃집 부부 살인사건에 어떤 책임감을 느낀다. 만약 파티고 없었으면 살인도 없었을까. 작가는 시선을 살인자에게로 돌린다. 인간의 관계와 실존을 깊이있게 파고드는 이 작품은 2016년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앞선 책이 평범한 사람의 우발적 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정소현 | 문학과지성사)은 우발적 범죄를 저질렀지만 죄책감을 지니지 않는 한 남자가 어떻게 이런 성격을 형성하게 됐는지, 어떤 사람으로 변모해가는지를 조명한다. 무슨 일에서나 실수하는 습관을 가진 주인공 석원은, 자신이 기르던 식물도 대부분 실수로 죽이고 만다. 아버지는 그런 실수투성이의 그가 “큰 사고를 쳐서 감방에서 평생 썩게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곤 했다. 석원의 실수는 아버지에게도 적용된다.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석원은 그 길로 집에 들어가지 않지만 죽은 아버지에 대해 어린 시절 동네 개를 실수로 차로 치어 죽였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무게의 죄책감만을 느낀다. 그의 실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시작됐을까. 그리고 어디까지 계속 될까. 정소현은 ‘실수하는 인간’을 통해 버려지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조금 다른 생각의 차이로 어떻게 자라나는지에 주목한다.

‘빅 픽처’(더글라스 케네디 | 밝은세상)는 살인이란 행위보다 살인자의 삶에 주목한 책이다. 살인을 저지른 인물의 인생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책이다. 미국 뉴욕 주 월가의 변호사 벤은 아름다운 아내 베스, 두 아들과 살고 있다. 벤은 어린 시절부터 사진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변호사가 된 인물이다. 여기에 더해 베스는 벤을 마치 벌레라도 본 듯 피해 다니기 바빠 그의 일상은 지쳐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벤은 아내가 이웃집에 사는 사진가 게리와 불륜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벤은 게리네 집에 찾아가 말싸움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했다. 요트사고로 위장하여 게리의 시신을 불태운 다음, 몬태나 주 마운틴폴스로 도망친다. 벤은 남은 생을 게리로 살아가기를 결심하고 젊은 시절에 접은 사진가의 꿈을 이루려 한다. 그런데 벤이 찍은 인물 사진이 지역 신문에 실리면서 비밀이 드러날 위험에 처한다. 빼어난 착상 위에 반전을 거듭하는 폭발적 흡입력의 스토리가 생생한 유머와 위트와 함께 펼쳐져 유럽을 사로잡은 스릴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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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방범' '괴물의 심연' '종의 기원' 책표지)


■ “사람 죽이는 거 … 그게 뭐?”

우발적 살인자들이 다양한 이유와 사연으로 살인자가 됐다면 이제 소개할 살인자들은 ‘그런 것 따윈’ 없다.

‘모방범’(미야베 미유키 | 문학동네)은 적어도 한일 문학계의 레전드라 불릴 만한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화차’ ‘이유’와 함께 대표적 사회파 미스터리로 꼽힌다. 그가 내세운 인물은 죄책감 없는 범인이다. 도쿄, 한 공원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 핸드백의 주인은 3개월 전에 실종된 20대 여성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오른팔과 핸드백의 주인이 각자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텔레비전 방송국에 알려온다. 피해자의 가족을 전화로 농락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범죄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범인의 목소리에 전 일본은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수사는 난항을 거듭한다. ‘이유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은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 살해하고, 피해자의 가족을 괴롭히고, 경찰을 조롱한다.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사람들은 연속살인사건의 관객이 되어 범인이 만들어가는 거대한 범죄극에 참여하게 된다. 작가는 경찰과 범인, 피해자와 목격자, 그들의 가족과 이웃, 친구 등 수많은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을 그려내는 동시에 인간의 추악한 내면에 집중한다.

‘괴물의 심연’(제임스 팰런 | 더퀘스트)은 성공한 신경과학자이자 의대 교수인 제임스 팰런의 이야기다. 그는 온화한 가정에서 자랐고,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많은 친구를 둔 사람이다. 하지만 전문 분야인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뇌 구조를 연구하다 어느 날 자신의 두뇌 사진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조상 중 살인자가 즐비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이 의심할 여지없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스스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팰런은 그 결과를 TED 강연에서 발표했고 이는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저자는 때로는 과학자의 냉철한 시각으로, 때로는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더듬는 회고적 방법으로 사이코패스에 대해 한 차원 깊은 탐구를 진행한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자기 탐구기이며 동시에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과학적 질문과 성찰이 담긴 책을 통해 ‘인간은 무엇인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종의 기원’(정유정 | 은행나무)에 대해 작가는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라고 말했다. 가족여행에서 사고로 아버지와 한 살 터울의 형을 잃은 후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정체불명의 약을 매일 거르지 않고 먹기 시작한 유진. 그는 주목받는 수영선수로 활약하던 열여섯 살에 약을 끊고 경기에 출전했다가 그 대가로 경기 도중 첫 번째 발작을 일으키고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없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약과 늘 주눅들게 하는 어머니의 철저한 규칙, 그리고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듯한 기분 나쁜 이모의 감시 아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었던 유진은 가끔씩 약을 끊고 어머니 몰래 밤 외출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약을 끊은 어느날 유진은 피투성이인 자신의 몸과 끔찍하게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보게 된다. 지금껏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 이르러 ‘악’ 그 자체가 되어 놀라운 통찰력으로 ‘악’의 심연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또 영혼이 사라진 인간의 내면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그 누구도 온전히 보여주지 못했던 ‘악’의 속살을 드러낸다. 특히 작가의 말이 가슴에 내리꽂힌다.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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