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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잇 수다]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다' 타임슬립, 읽는 자만 느끼는 묘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시간이 뒤틀린다. 나는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삶을 되돌릴 기회를 얻는다. 다시 한번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누구나 살아가며 생각하는 이 가설은 요즘 방송가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곧 사그라질 반짝 소재처럼 보였던 타임 슬립은 ‘나인’ ‘시그널’ 등 명작에 이어 ‘명불허전’ ‘터널’ ‘맨홀’을 지나 ‘고백부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보다 앞서 문학계는 오랜 시간 상세하고 아찔하게 타임 슬립을 다뤄왔다. 타임 슬립 재미의 정석, 문학계가 다룬 타임슬립 도서들이 즐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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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타임슬립' '타임슬립 1932')


■ 역사를 품다

‘타임슬립’(오기와라 히로시 | 웅진지식하우스)은 청춘소설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이 두 소년이 2001년과 1945년이라는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뒤바뀌면서 겪게 되는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담았다. ‘시간 이동’이라는 소재를 9.11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현대사의 굵직한 비극에 접목시켜 새로운 유형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2001년 늦여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백수청년 오지마 겐타는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다. 쇼와 19년의 같은 시간, 소년병 이시바 고이치는 93식 비행기를 그 바다에 띄우며 출격 연습을 하다 50년 차를 두고 겐타가 사는 공간과 뒤바뀐다. 2001년 미국 9.11 다음날과 2차 대전 종전 다음 날, 뒤바뀐 두 소년을 통해 작가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전쟁은 어디에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타임슬립 1932’(이하 | 실천문학사)도 십대 소년 전율의 시선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관통했던 주요 사건들을 조명한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답습하고 위인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을 보여주고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룬다. 열일곱 소년 전율은 아버지의 DVD 가게 카운터를 지키다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깊은 사연이 있는 물건을 만지면, 물건의 기억을 따라 그 물건이 존재했던 시대로 시간 이동을 하는 것. 역사 현장 한복판을 옮겨다니던 전율은 어느 날, 여자친구 현아가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현아의 의식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그 방법은 뜬금없이도 1932년 4월 상하이에 있다.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그 날로 시간 이동을 한 전율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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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화성의 타임슬립' '시간 여행자의 아내')


■ '타임 슬립' 레전드

‘화성의 타임슬립’(필립 K. 딕 | 폴라북스)은 20세기 SF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필립 K. 딕의 작품이다. 작가의 활동 최전성기인 1964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고도로 발달된 기계 문명사회에서 제기될 수 있는 광기의 문제를 보여준다. 1994년 식민지 화성, 인구 증가와 환경오염으로 한계에 다다른 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근근이 살아간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과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수리공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잭 볼렌은 화성의 수자원노동조합장인 어니 코트를 위해 일하게 되면서 그의 생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화성의 타임슬립’은 정체성과 다중 현실, 불안감과 편집증 등 작가만의 키워드를 감상할 수 있는 걸작이다. 작가는 일반적인 SF의 소재를 이용해 앞으로 맞이하게 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가 그려낸 미래의 모습은 21세기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악몽이 일상을 잠식해 들어가는 작가 특유의 현실 붕괴 감각이 돋보인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드는 인물의 내적 심리 독백이 읽는 맛을 더한다. 대부분 독자들은 이 책을 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재밌어서 놓을 수 없는 책”이란 독특한 평을 내놓기도 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오드리 니페네거 | 살림)는 이미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 보통 시간대를 살아가는 클레어와 예측 불가능한 시간대를 살아가는 헨리의 위태롭고 절박한 마음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은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비주얼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작가 오드리 니페네거는 이 소설 데뷔작에서 예술가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 가장 흔한 주제인 ‘사랑 이야기’를 참신하게 풀어낸다.

유전적 장애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시간 여행자 헨리는 모든 소지품과 옷을 남겨 두고 알몸으로 갑자기 다른 시간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시간 여행은 그에게 있어 행운이 아닌 저주다. 시간 여행을 할 때 그는 음식과 옷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과 폭력을 일삼고, 그 때문에 늘 도망치거나 위험에 노출돼야 한다.

가끔씩 그는 과거로 돌아가 어린 자신과 조우하기도 하는데 저주 같은 시간 여행에서 헨리가 가장 위안을 받을 때는 운명적인 사랑인 클레어를 만날 때다. 그는 클레어의 집 근처 초원에서 어린 시절의 클레어를 만나고, 클레어는 성장하는 동안 각기 다른 나이로 자신을 찾아오는 이 기묘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헨리와 클레어는 현실의 사랑을 이뤄낼 수 있을까.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의도적으로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들의 사랑을 묘사한다.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문학적 장치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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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내일')


■ 기욤 뮈소, 그만의 세상

기욤 뮈소는 타임 슬립을 가장 잘 활용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기욤 뮈소의 ‘내일’(밝은세상)은 기욤 뮈소가 로맨스에서 벗어나 도전한 스릴러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 언론들이 무결점 스릴러라는 찬사를 보낸 작품. 그만의 로맨틱 코미디 방식의 감각적인 글쓰기와 함께 알프레드 히치콕 스타일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하버드대 철학교수 매튜 샤피로는 벼룩시장에서 중고 노트북컴퓨터를 구입한다. 그는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는 여자의 사진과 아이디를 보게 되고 사진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메일을 보낸다. 그 일을 계기로 아이디의 주인인 와인감정사 엠마와 채팅을 통해 대화를 시작하게 된 그는 엠마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어느 한 쪽이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서로의 메일이 도착한 날짜를 보고 1년의 시차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튜는 아내의 죽음을 막아달라 부탁하지만 엠마는 매튜 아내의 진실을 알게 된다. 타임 슬립 소재에 결말을 확신할 수 없는 필력이 더해지며 독자의 재미를 더한다.

‘내일’과 다르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밝은세상)는 기욤 뮈소 최강점이 잘 살아있는 로맨스 소설이다. 국내에서 영화화된 이 작품은 시간의 개념과 인생의 선택에 대한 성찰의 기회 제공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생생한 화면 구성, 빠른 전개와 결합돼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주인공 엘리엇은 명망 있는 외과의사로 성공적인 삶을 열어왔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사고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혀 산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신비의 노인으로부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열 개의 알약을 얻게 된 그는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는다. 죽은 일리나를 살려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의 삶은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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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촌마게푸딩'1, 2권)


■ 즐거운 시대 뛰어넘기

역사와 사랑, 인간의 고뇌를 담게 되는 일반적 타임 슬립 소설과 달리 ‘촌마게 푸딩’(아라키 겐 | 좋은생각) 시리즈는 유쾌한 타임 슬립 여행에 달콤한 디저트를 결합한 유쾌한 작품이다. ‘촌마게 푸딩’ 1권은 과거에서 온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이야기를 그렸다. 180년 전 에도 시대에서 현대로 타임슬립해서 온 사무라이의 눈을 통해 현대인들이 잊고 있던 사람의 도리를 일깨운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해내야 하는 싱글 맘 히로코는 늘 집안일과 회사일 사이에서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히로코와 그녀의 아들 도모야 앞에 이상한 남자 기지마 야스베가 나타나고,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라는 그와의 기상천외한 동거가 시작된다. 한편, 신세를 갚기 위해 가사 일을 시작한 야스베는 디저트 만들기에 눈을 뜨게 되며 유쾌한 21세기 삶을 시작한다. 1권은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촌마게 푸딩’ 2권은 반대로 21세기 소년 도모야가 에도 시대로 가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모든 일에 시큰둥한 중학생 도모야는 어느 날 학교를 몰래 빠져 나와 거리를 배회하던 중 이상한 빛에 이끌려 180년 전 에도 시대에 불시착한다. 촌마게(상투)를 튼 사람들 속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던 도모야는 8년 전 갑자기 나타났던 사무라이 야스베 아저씨를 떠올린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야스베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신세. 도모야는 새롭게 사귄 친구들과 함께 위기에 처한 야스베를 구하고 세상 최고의 푸딩을 지키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즐겁게,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더없이 적절한 타임 슬립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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